12호 · 2026.10.14
모은 건 순서, 불린 건 지수
월급의 절반을 먼저 떼는 구조가 한 일과, 지수가 한 일을 나눠서 정리했습니다. 운이 좋았던 구간도 함께 적었습니다.
저는 입사 때부터 남는 돈을 모으지 않았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면 최소 50%, 절반부터 먼저 떼어 투자했습니다. 그렇게 18년을 다니고, 2026년 4월 말 회사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돈이 꾸준히 불어나기 시작한 건 저축을 시작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개별 종목 대신 지수만 사게 된 뒤부터였습니다. 먼저 떼는 구조와 지수, 이 두 가지가 각각 어떤 일을 했는지 차례로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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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돈은 남지 않습니다
Q.쓰고 남은 돈을 모으면 안 되나요?
그렇게 하면 생각만큼 모이지 않습니다. 쓰고 남으면 하겠다는 돈은 대개 남지 않습니다. 쓸 곳은 늘 먼저 생기고, 저축은 그다음 순서로 밀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Q.순서만 바꿔도 정말 달라지나요?
순서가 의지보다 강하다는 걸 보여준 연구가 있습니다. 매드리언과 시어가 NBER 워킹페이퍼로 발표한 연구입니다. 미국의 한 대기업이 퇴직연금을 직접 신청해야 가입되는 방식에서, 따로 빠지겠다고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가입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회사 지원 조건은 그대로였는데, 입사 3개월에서 15개월 차 직원의 가입률이 37%에서 86%로 뛰었습니다.
미리 정해두는 힘을 보여준 연구가 하나 더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와 슐로모 베나치가 2004년 Journal of Political Economy에 실은 ‘Save More Tomorrow’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오를 월급의 일부를 미리 저축에 걸어두게 했더니, 참가자들의 저축률이 40개월 동안 3.5%에서 13.6%로 올랐습니다.
| 구분 | 전 → 후 |
|---|---|
| 퇴직연금 자동가입 전환 후 가입률 (입사 3~15개월 차, NBER) |
37% → 86% |
| Save More Tomorrow 참가자 저축률 (40개월, JPE 2004) |
3.5% → 13.6% |
Q.실제로는 어떻게 하셨나요?
같은 원리입니다. 월급이 들어오면 정해진 날, 정해진 만큼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게 해두었습니다. 쓸지 말지 고민하기 전에 돈이 먼저 자리를 잡도록, 순서를 바꿔둔 셈입니다.
상여금이나 보너스처럼 비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에도 같은 규칙을 적용했습니다. 이런 돈도 최소 50%는 먼저 투자로 보냈습니다. 목돈은 쓸 곳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쉬운 돈이라, 들어오기 전에 비율을 정해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다만, 50%가 정답은 아닙니다
Q.월급을 그렇게 많이 떼면 뭘로 먹고 사나요? 원래 여유 있는 사람 얘기 아닌가요?
충분히 나올 만한 말입니다. 50%는 제 경우의 숫자일 뿐이고, 형편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핵심은 비율의 크기가 아니라 순서입니다. 10%든 20%든, 쓰기 전에 먼저 떼느냐 쓰고 남기느냐가 갈림길입니다.
모으는 것과 불리는 것은 달랐습니다
Q.먼저 떼어 투자하면 돈이 저절로 불어나나요?
아니었습니다. 먼저 떼는 구조는 돈을 모아줬지만, 불려주지는 않았습니다. 입사 초기는 개별 종목 투자가 가능한 시기였고, 저도 실제로 했습니다. 결과는 지속적인 수익이 아니었습니다.
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0년 3월부터 10월까지 개인투자자 약 20만 명의 매매를 분석했는데, 새로 시장에 들어온 투자자의 62%가 손실을 봤습니다(파이낸셜뉴스 보도 인용). 코로나 이후 시장이 크게 오르던 시기였는데도 그랬습니다.
Q.왜 종목을 골라서는 잘 안 되나요?
고르는 일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S&P 다우존스 지수의 SPIVA 보고서(2025년 말 기준)를 보면, 2025년 S&P 500 구성 종목 가운데 지수보다 더 오른 종목은 30%뿐이었습니다. 지수 안에서 고르더라도 열 종목 중 일곱 종목은 지수만 못했다는 뜻입니다.
전문가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보고서에서 미국 대형주 액티브 펀드의 85.6%가 2025년 말까지 10년 동안 S&P 500보다 못한 성과를 냈습니다. 기간을 20년으로 늘리면 그 비율은 92.9%까지 올라갑니다.
| 구분 | 수치 |
|---|---|
| 2025년 S&P 500 구성 종목 중 지수보다 더 오른 종목 | 30% |
| 10년간 S&P 500보다 못한 미국 대형주 액티브 펀드 | 85.6% |
| 20년간 S&P 500보다 못한 미국 대형주 액티브 펀드 | 92.9% |
규정이 결과를 바꿨습니다
Q.지수 투자로는 어떻게 넘어가셨나요?
처음엔 제 판단이 아니라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직업 규정상 개별 종목 투자가 금지됐고, 그때부터 은퇴 전까지 저는 지수만 샀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규정이 결과를 바꿨습니다. 지속적인 수익이 나기 시작한 건 지수 투자 이후부터였습니다. 매달 같은 날, 같은 금액이 지수로 들어가는 구조만 남았습니다. 제가 종목을 더 잘 골라서가 아니라, 고르는 일 자체를 하지 않게 된 덕분이었습니다.
Q.지수는 오래 들고 있으면 괜찮은가요?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수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J.P. Morgan 자료를 보면 1950년부터 2025년까지 S&P 500을 20년씩 들고 있었을 때, 가장 나빴던 구간도 연평균 +6%였습니다. 마이너스로 끝난 20년은 없었습니다.
물론 과거 기록이고, 앞으로도 같다는 보장은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담았습니다
Q.구체적으로 어떤 비중이었나요?
미국 지수에 본격적으로 넣기 시작한 건 2020년 코로나 즈음부터입니다. 비중은 나스닥이 S&P 500보다 크고, 굳이 나누면 7 대 3 정도입니다.
나스닥은 QQQ로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TQQQ 비중을 점차 늘렸습니다. TQQQ는 나스닥100 하루 움직임의 3배를 따라가는 레버리지 상품입니다. 은퇴 전 저는 이 TQQQ가 -79%까지 빠지는 구간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권해드리는 방법이 아니라, 제 기록으로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앞서 본 20년 데이터도 S&P 500 이야기라 레버리지 상품에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저는 생활비 2년치를 따로 CMA에 두고, 투자금과 생활비를 분리해둡니다.
Q.폭락장에서는 어떻게 하셨나요?
2020년 코로나 폭락 때도 한 주도 팔지 않았습니다. 월급날 자동이체는 그대로 빠져나갔고, 같은 월급으로 더 많은 수량이 쌓였습니다. 먼저 떼는 구조가 하락장에서도 멈추지 않고 돌아간 셈입니다.
운이 좋았던 구간도 있었습니다
Q.결국 상승장 덕분 아닌가요?
그 부분은 인정해야 합니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 말부터 제가 회사를 나온 2026년 4월 말까지, 나스닥100은 약 +214%, S&P 500은 약 +123% 올랐습니다. FRED 종가로 계산한, 배당을 뺀 달러 기준 지수 숫자입니다.
| 지수 | 상승률 |
|---|---|
| 나스닥100 | 약 +214% |
| S&P 500 | 약 +123% |
이 구간이 강한 상승장이었던 건 분명합니다. 나스닥 비중이 컸던 만큼, 저는 이 구간의 덕을 더 본 쪽입니다. 같은 방법을 다른 시기에 썼다면 숫자는 달랐을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누구나 은퇴할 수 있다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상승장에 꾸준히 돈을 넣을 수 있었던 건, 월급의 절반을 먼저 떼는 구조가 이미 10년 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가를 맞힌 게 아니라, 떨어질 때도 오를 때도 매달 같은 날 사고 있었을 뿐입니다. 구조가 먼저 있었고, 운은 그 위에 얹혔습니다.
정리
Q.이 글을 읽은 분이 바로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다음 월급날 전에 5분
- 월급날 자동이체 비율부터 정합니다. 50%일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 형편에서 매달 지킬 수 있는 숫자면 충분합니다. 작게 시작해서 월급이 오를 때마다 조금씩 올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 이체 날짜를 월급날 당일로 맞춥니다. 쓸지 말지 고민하기 전에 돈이 먼저 빠져나가게 하는 겁니다.
- 보너스 같은 비정기 수입에도 같은 비율을 미리 정해둡니다. 목돈은 들어오기 전에 정해두지 않으면 쓸 곳이 먼저 생깁니다.
그 돈을 어디에 둘지는, 종목을 고르는 일을 줄이는 쪽부터 검토해보셔도 좋겠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지수였습니다.
남는 돈을 모으는 방식으로는 은퇴까지 가기 어렵습니다. 먼저 떼는 구조가 돈을 모았고, 지수가 그 돈을 불렸습니다. 저는 순서를 믿습니다.
영상에는 이 글에 담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월급이 ‘먼저 투자’와 ‘생활비’로 갈라지는 장면, 퇴직연금 가입 방식 스위치가 ‘직접 신청’에서 ‘자동 가입’으로 넘어가는 장면, ‘월급→지출→남으면 저축’이던 카드 순서가 ‘월급→투자→지출’로 바뀌는 장면, 신규 투자자 100명 중 62명이 채워지는 장면, 그리고 ‘개별 종목 투자 금지’ 규정 문서에서 지수 하나로 넘어가는 장면이 화면으로 이어집니다. 중간에 “월급을 그렇게 많이 떼면 뭘로 먹고 사냐”는 동료의 반박에 답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8분 6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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