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 10호] “예금보다 못했습니다” —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그냥 두면 안 되는 이유

어쩌다 은퇴자 레터
10호 · 2026.10.06

예금보다 못했습니다

‘안전하게’ 넣어둔 퇴직연금이 실제로는 어떤 성적을 내고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확인할 것에 대해.

퇴직연금, 가입서에 서명한 뒤로 한 번도 열어보지 않으신 분이 많을 겁니다. 운용 지시를 안 해도 알아서 굴려준다는 제도가 있으니까요. 그 제도가 디폴트옵션입니다.

이번에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공식 통계로 그 디폴트옵션의 성적표를 하나씩 들여다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가장 많은 돈이 몰린 ‘안정형’의 수익률이 은행 정기예금 금리보다도 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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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옵션이 뭔가요

Q.디폴트옵션, 정확히 어떤 제도인가요?

정식 명칭은 사전지정운용제도입니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가입할 때 미리 지정해둔 상품으로 적립금이 자동으로 굴러가게 하는 제도입니다. 2022년 7월 도입돼 1년 유예기간을 거쳐 2023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됐습니다.

취지는 단순합니다. 많은 가입자가 운용 지시 없이 돈을 방치해서, 퇴직연금이 저수익 상품에 그대로 머무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영국·호주 같은 나라의 제도를 참고해, 방치해도 장기적으로 더 나은 수익을 낼 수 있게 만든 장치입니다. 규모도 빠르게 커져서 2025년 말 기준 적립금은 53조3000억 원, 가입자는 734만 명입니다. 1년 전보다 각각 33%, 16% 늘었습니다.


돈은 한쪽에 몰려 있었습니다

Q.다들 디폴트옵션 안에서 어떤 상품을 고르고 있나요?

디폴트옵션 안에도 위험등급이 네 단계 있습니다. 초저위험인 안정형, 저위험인 안정투자형, 중위험인 중립투자형, 고위험인 적극투자형입니다. 그런데 2025년 말 기준 적립금의 85.4%가 가장 낮은 등급인 안정형에 몰려 있습니다. 가입자 수 기준으로도 79%가 안정형을 골랐습니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수익률이 가장 낮은 쪽에 자기 퇴직연금을 묻어둔 셈입니다.

디폴트옵션 2025년 한 해 수익률
구분 수익률
안정형(초저위험) 2.63%
적극투자형(고위험) 14.93%
디폴트옵션 전체 평균 3.69%

같은 제도, 같은 퇴직연금인데 등급 선택 하나로 약 5.7배 차이가 났습니다. 전체 평균 3.69%는 1년 전인 2024년 4.1%보다 오히려 떨어졌는데,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그 원인으로 안정형 쏠림이 더 심해진 것을 꼽았습니다.


‘안정형’은 안전했을까

Q.그래도 안정형은 손해 볼 일이 없으니 괜찮은 것 아닌가요?

2026년 3월 기준 디폴트옵션 안정형 수익률은 2.42%였습니다. 같은 시점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2.93%였습니다. 안전하게 넣어뒀다고 믿은 돈이, 그냥 은행 예금에 넣은 것보다도 못한 성적을 낸 겁니다.

이유는 분류 자체에 있습니다. 한국의 디폴트옵션은 초저위험 등급 안에 사실상 원리금보장형, 즉 예금성 상품을 대거 포함시켜 뒀습니다. 이름은 안정형이지만 구조는 예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균관대 SKK GSB의 영주 닐슨 교수는 등급 이름을 안정형, 적극투자형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상품 구성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안전을 원하는 마음이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안전’과 ‘손해를 안 본다’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2%대 수익률은 돈의 가치가 조금씩 줄어드는 구조에 더 가깝습니다.


격차는 상품 선택에서 났습니다

Q.다른 선택을 했다면 얼마나 달랐나요?

고용노동부가 2026년 5월 발표한 퇴직연금 투자 백서를 보면, 타겟데이트펀드(TDF)의 2025년 수익률은 13.7%였습니다. 디폴트옵션 평균 3.7%의 약 4배, 퇴직연금 전체 평균 6.5%의 2배가 넘습니다. 같은 백서에서 2025년 말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 원을 넘었고 전체 평균 수익률은 역대 최고였는데, 정작 방치된 돈을 더 잘 굴려주자고 만든 디폴트옵션은 그 평균에도 못 미쳤습니다.

퇴직연금 가입자 전체로 넓혀 보면 격차는 더 분명합니다. 2025년 기준 상위 10%의 수익률은 19.5%, 하위 10%는 0.5%로 약 40배 차이였습니다. 상위 10%는 실적배당형 비중이 84%, 하위 10%는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74%였습니다. 자산을 어디에 담았는지가 이 격차를 만들었습니다. 2026년 상반기에도 코스피가 약 56% 오르는 동안 디폴트옵션 전체 평균 수익률은 6개월 누적 3.26%에 그쳤습니다.


다만, 이건 아닙니다

Q.정부가 수익률 낮은 상품을 퇴출시켰다던데요?

정부도 이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2026년 3월, 고용노동부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디폴트옵션 상품에 대한 성과평가를 처음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성과가 계속 미달되는 상품에는 가입 중지나 시장 퇴출 같은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직 확정된 시행이 아니라 검토와 추진 단계입니다. 2026년 하반기에 대기기간 단축 같은 개편이 함께 진행된다는 보도는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나 시행 시점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퇴출시켰다”가 아니라 “퇴출까지 검토하고 있다” 정도로 이해하시는 게 정확합니다. 제도가 바뀌기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내 계좌를 먼저 확인하는 쪽이 빠릅니다.


저는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Q.그래서 실제로 어떻게 관리하고 계신가요?

저도 한때는 퇴직연금을 그냥 넣어둔 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생각을 바꿔서, 1년에 한 번씩은 꼭 로그인해 제 적립금이 어떤 등급, 어떤 상품에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하면 직접 운용 지시를 넣고 있습니다. 거창한 결정이 아니라 그냥 들여다보는 습관 하나였습니다. 저는 매년 직접 확인합니다.


정리

Q.이 글을 지금 보는 분이 오늘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오늘 저녁 5분

  1. 퇴직연금 사업자 홈페이지나 앱에 로그인합니다. 회사에서 가입한 퇴직연금이 어느 금융기관에 있는지부터 확인하면 됩니다.
  2. 내 적립금이 지금 어떤 위험등급으로 운용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안정형인지, 안정투자형·중립투자형·적극투자형인지,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상품이 들어 있는지 봅니다.
  3. 그 등급이 내 나이, 내 은퇴 시점에 맞는지 한 번 따져봅니다. 정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중요한 건 ‘모르고 두는 것’에서 ‘알고 고르는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안정형에 묻어두기만 하면 안전한 게 아니라, 은행 이자보다 못한 결과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들여다보는 사람에게만 다른 결과가 주어집니다.

영상에는 이 글에 담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같은 회사, 같은 해에 퇴직연금에 가입한 두 사람이 10년 뒤 어떻게 갈렸는지에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안전’ 상품의 순위가 성적표에서 뒤집히는 장면, 정기예금 막대가 안정형 막대를 추월하는 장면, ‘안정형’ 이름표가 떨어져 나가며 그 아래 ‘예금’이 드러나는 장면까지, 화면으로 보시면 이 글보다 훨씬 선명합니다. 9분 39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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